한국의 문학사상 - 현대문인 오상순에 상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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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2-07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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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그는 자신의 ‘폐허의식’이 새로운 생명의 창조와 결부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 목재상 아들로 태어나 日本(일본) 도시샤대학을 나와 전도사 활동을 하던 그는 1920년 김억·남궁벽·황석우· 변영로등과 함께 [폐허]동인으로 참가, 창간호에 <시대고와 희생>이란 평론을 발표하면서 식민 치하의 허무주의자로 돌아선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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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초, 그는…
그의 시업을 대표하는 말은 허무와 적멸이다.
그의 문학 활동은 1920년 폐허 동인에 가입하여, 김억·남궁 벽·황석우 등과 친교를 맺으면서 폐허 창간호에 자신의 人生관과 문학관을 담은 수필〈시대고와 그 희생〉을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불교에 귀의, 허무의 극한에서 공(空)을 깨치고 속세로 돌아와 동 가식서가숙하며 70평생을 문학도들에게 시의 순수를 자신의 삶 자체로 깨우쳐주다 갔다.
한국의 문학사상 - 현대문인 오상순에 상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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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순은 시대와의 불화가 빚어낸 대자유인이었다. 그의 문학 활동은 1920년 폐허 동인에 가입하여, 김억·남궁 벽·황석우 등과 친교를 맺으면서 폐허 창간호에 자신의 인생관과 문학관을 담은 수필〈시대고와 그 희생〉을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오상순은 원래 기독교 신자로서 1919년 교회 전도사로 있었으나 그 뒤 불교로 개종하여 1921년 조선중앙불교학교, 1923년 보성고등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하였다. 허무는 실체와 差別상을 부정하여, 적멸은 소계의 고와 집을 벗고 열반 위락의 경지에 듦으로써 고통,번뇌,대립,갈등이 해소된 세계를 뜻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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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여러 사찰을 전전하며, 참선과 방랑의 생활을 계속하면서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기독교도, 불교의 공사상도 초월해 「공초(空超)」라 한 오상순은 하루 2백개비씩 줄담배를 피운「꽁초」로도 유명하다. 오상순같이 세상과의 불화를 견뎌낼 수 없는 타고난 순정한 기질로 세 상 어디에도 편입하지 못하고 오직 자유혼으로 문학을 일군 방외(方外) 문인들. 이들의 맥은 우리 문학사에 깊은 골을 이루고 있다
유해는 수유리에 안장되어 있고 1963년 여기에〈방랑의 마음〉 첫머리를 새긴 시비가 건립되었다.
오상순은 원래 기독교 신자로서 1919년 교회 전도사로 있었으나 그 뒤 불교로 개종하여 1921년 조선중앙불교학교, 1923년 보성고등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기도 하였다. 이 글에서 그는 자신의 ‘폐허의식’이 새로운 생명의 창조와 결부된 것임을 밝히고 있다아
순서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방랑의 마음〉(조선문단, 1935) 등 몇몇 작품에서는 사물의 심상화를 성공적으로 시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밖에도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것으로〈아시아의 마지막 밤풍경〉을 들 수 있는데, 이 작품은 호흡이 길고 주제를 부각시키기 위하여 여러 사실을 次例로 제시하는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생전에 발간한 시집은 없고 1963년 제자들에 의하여《공초오상순시집》이 간행되었다. 1920년대 이후 작품 활동을 중지하였고, 광복 후 다시 민족적인 주제의 시를 쓰기도 했다. 전국 여러 사찰을 전전하며, 참선과 방랑의 생활을 계속하면서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초기작에는 현실의 허무, 절망, 고뇌를 노래하며 영원한 사랑을 동경하는 이상주의적 경향이 짙다.